공지 | 서예의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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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무원미술협회 작성일25-04-16 16:06 조회2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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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는 쓰기의 예술이다.
엄밀히 말하면 문자를 아름답게 서사하는 예술이다.
예술이긴 예술인데 문자를 형태적으로 아름답게 서사하는 조형성 위에, 고결한 인품과 학식 등정신성의 수반을 강조하면서 인문과 예술의 융합체로 계승되어 왔다. 그래서 서예는 형태 미과 내용미를 동시에 아우를 때 그 가치는 배가 된다. 때문에 서예는 필획의 생동감을 수반한 活物의 예술성과, 동시에 학식에 통달한 사람이거나 志士가 아니면 배워도 미칠수 없다는 말처럼 내면적 소양을 결부지어 이해하는 것이 전통적 인식이다. 다만 21세기 기계첨단화의 스마트시대를 맞아 쓰는 행위 그 자체가 실효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쓰기의 예술이 이 시대에 어떠한 효능과 가치가 있느냐가 서예의 존재이유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한국의 서예는 정신적 측면을 운운하는 것은 고사하고, 실용화된 컴퓨터 활자체가 갖지 못하는 건조한 감성을 극복하는 표현예술로서 주목받고 있다. 즉, 문자조형의 극대화에 의한 다양한 형태미를 통해 이 시대의 활자가 갖지 못하는 문자미 감과 감성에 부응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실제로 전통의 서예교육을 담당하던 기관들은 점차 침체된 반면, 이른바 ‘캘리그라피’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여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함으로써 문자에 표정을 살리고 정감을 불어넣어 시대미감을 자극하는 예술행위로 전환되고 있다. 공교육기관에서도 전통서예의 비중은 줄어든 반면 캘리그라피 교육이 활성 화되었고, 심지어는 대학의 ‘서예학과’는 ‘서예디자인학과’라는 이름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야하는 급변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21세기로 접어들어 한국서예는 정체성에 대한 대혼란을 겪으면서, 한편 으로 21세기 한국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서예가 적응해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과정에 놓여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통의 역사성과 계통적 성향이 강했던 인문으로 서의 精神優位的 서예는 점차 인식이 줄어든 반면, 표현력이 극대화된 예술로서의 形態優 位的 서예인식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는 이성 보다는 감성을, 클래식 보다는 대중가 요를, 역사 보다는 신세계에 관심을 두는 사회적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때문에 21세기에 접어들어 한국의 서예문화는 전통의 순수성 보다는 현대의 감각성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시각적 차이는 크겠지만, 그 관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변화의 시대흐름 속에서 우리는 21세기 한국서예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인식할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敎化’에서 ‘交感’로의 변화이다. 20세기까지 전승해온 서예인식 가운데 목표로 삼았던 ‘잘 쓰기’라는 점을 이제는 ‘어떻게 쓰기’라는 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즉, 과거 서예는 글씨를 통해 정서를 바르게 함양하고 교훈적 감화를 주는 데 목표를 두었다면, 오늘날 서예는 글씨를 통해 정감을 느끼게 하고 감성적 소통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둘째, ‘正法’에서 ‘眞法’으로의 변화이다. 20세기까지 전승해온 서예교육은 대체로 정형화된 틀과 규율적인 正法 ․ 正道를 중시하는 것으로부터 점차 창의적 세계로 나아갈 것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서예는 창의적 사고활동과 감성개발의 교육으로서 접근하고, 이를 통해 점차 전통적인 서법과 수신성 ․ 역사성 등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셋째, ‘停滯性’에서 ‘正體性’으로의 변화이다. 한국서예는 원시적 미감이 강렬 했던 삼국시대 이후로 많은 심미의 변화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상당히 정형 화된 틀 속에서 예술성이 경직되어 있다. 이는 법첩이라 불리는 규범적 전통서예에 상당히 편중되어있기 때문이며, 예술로서의 서예본질에 대한 고민, 한국서예에 대한 역사적 인식 등에 대한 부재에서 오는 것이다. 특히 한글은 궁체가 한글서예를 대변하고 있다고할 정도로 그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궁체가 한글서예의 정형화를 가져오면서 다양한 한글서예의 역사콘텐츠 개발이 결여된 점도 사실이다. 한글은 우리나라만의 서예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특수성이 강한 분야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다양한 한글서예에 대한 학문적 탐구와 창작콘텐츠로서의 인식을 통해 한국서예의 정체성을 살리는 데 일조해야 할 것이다.